시온성·경주기독학생회

미국서 삼남매 인재로 키운 황경애 시인의 대담한 인생 이야기

황금천 2008. 7. 26. 13:37

 

<중앙일보 기사>
 
3남매 인재로 키운 황경애 시인, 자녀교육 비법 공개


3남매 모두 '인재'로 키운 황경애 시인
  '자녀교육 비법' 공개한다

 
 첫딸-예비 법조인, 아들-예비 외교관
 막내는 하버드 전액 장학생 입학
 31일 본사 강당서 세미나 개최
 

 "이 모든 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황경애 시인(사진)에게 2008년은 기도의 응답이 모두 이루어진 해다.

 

 귀넷 카운티 소재 피치트리 릿지 고교 수석졸업생인 차녀 조이(최은희) 양이 하버드와 예일 대학교 전액 장학생과 빌 게이츠 밀레니엄 100만 달러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된 데 이어 보스톤대학교 국제정치학과 전액장학생인 장남 요한(최성찬) 군 역시 펠로우십 장학금 10만달러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외교관 진출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또한 요한 군과 같이 보스톤대학교 국제정치학과 전액장학생 출신인 장녀 그레이스(최은혜) 양도 백악관 인턴쉽과 매사츄세츠 주지사 인턴쉽으로 일한 후 현재 미국 10대 로펌인 Paul Weiss LLP에 취업해 예비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훌륭한 어머니로 3남매를 자랑스럽게 키워 낸 황 시인은 더불어 신간 시집 '내 노래는 아름다우니'(말씀과 만남)를 올해 출간하는 문인으로서의 기쁨까지 맛봤다. 제 3 시집 ' 어머니' (은혜 미디어) 도 출간

 겹경사를 맞은 황 시인을 지난 22일 만났다.

 

 자녀들을 위해 늘 새벽 제단을 쌓아 온 그녀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회와 나라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날마다 기도한다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Honor)하고 정직(Honest)하며 자신에게 겸손(Humble)한 사람이 되어 줄 것을 자녀들에게 당부하는 그다.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딛고 일어나 혼자 힘으로 세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낸 황 시인이기에 어려움을 극복해 낸 3남매의 성취가 더욱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을 이겨내고 성취와 승리를 얻어 낸 황 시인의 뒤에는 드라마보다 더 짙은 인생의 향취가 담겨 있었다.

 

 1960년 경주 출생인 황 시인은 간호사로 심장개폐술이 처음 도입된 1980년대 초반, 서울대학교 대학병원 심장병 중환자실에서 특별 훈련을 받아 당시 하지스 미8군 사령관 고문의 부인과 함께 심장병 환자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 일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가 방한했을 때에는 심장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자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심장수술을 후원한 한미재단의 주선으로 뉴욕 롱 아일랜드 쥬위시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심장 질환을 가진 5세 여아 민영의 사연을 '내 이름은 불여우예요'라는 수기로 기고해 1982년 간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황 시인은 민영의 죽음을 계기로 귀국,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왕립병원에 정부 초청 간호선교사로 파송돼 영어와 아랍어 통역을 담당하며 매주 기숙사에서 비공개 예배를 인도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도미, 로렌스빌에 터를 잡은 그는 목회자의 아내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워낙이 겁이 없는데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이 강했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 후 혼자서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그는 조국 땅 곳곳을 안 밟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 맏딸 그레이스를 초등학교 때 혼자서 한 달간 캐나다에 선교를 보냈을 정도로 대담한 엄마기도 하다. 3남매 모두 여름이면 다양한 캠프와 니카라구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단기 선교를 보내 세상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 주었고 아이와 함께 한국을 방문, 땅굴부터 제주도 남단까지 한국의 구석 구석을 여행하며 뿌리 찾기를 도와 주었다.

 

 "하루 하루의 삶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낸 것 밖에 없어요"

 황 시인은 한때 애틀랜타 한인방송국의 총책임자로 애틀랜타 한인사회에 한인라디오 방송을 정착시켰으며 이효리와 이정현, 성유리, 송대관 등 한국 유명 연예인들의 애틀랜타 공연을 성사시켜 교포 사회에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이후 레녹스 몰을 비롯한 유명 백화점 내에 '조이 패션'을 운영해 마케팅 세일즈 부문에서도 성공을 일궈냈으며 현재는 국제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생활을 위해 홀몸으로 비즈니스를 감당하면서도 3남매의 학교 행사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던 황 시인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밤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잠들지 않고 기다리며 시를 써 왔다.

 

 한국문인협회와 국제 펜클럽 회원으로 또한 애틀랜타 여성문학회 회원으로 감동의 삶을 살아 낸 그의 삶의 괘적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강인함 뒤에는 시 '고독'에 표현된 것처럼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내게 과분한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지 주님 앞에 서는 날 꼭 물어 볼 거야'라는 그의 눈물과 막내 딸 조이 양이 어머니 황 시인에게 보낸 감사 카드의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으로 오히려 우리 가족들의 사랑의 끈을 더욱 단단하게 맺어주신다'는 단단한 사랑이 질긴 동아줄로 이어져 있다.

 

 황경애 시인은 3남매를 키워 낸 그의 이야기를 오는 31일 오후3시 애틀랜타 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애틀랜타 한인 부모들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

 

 김수영 기자


 kateskim@koreadaily.com

 

[출처] 송알 편집위원 황경애 시인의 2녀1남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작성자 좋은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