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한국어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나이 많은 '한국어 만학도'가 많아졌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도 있다. 대구대 한국어연수센터에서 3주간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일본인 만학도 3명을 만났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오후 대구대 캠퍼스에서 만난 그들은 한국어교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구사투리가 너무 어렵고 재미있다."는 그들의 한국어 사랑 얘기를 들어보자.
▲'한국어 공부로 노년 보내요'
일본 지바현 후나바시시에서 온 스즈키 히데오(鈴木英雄·70) 씨는 5년 전 퇴직한 뒤 한국어 공부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스즈키 씨는 지난 1973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퇴직하고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6년 전 부인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가 한국의 '정(情)과 한(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자연스럽게 한국말도 좋아하게 됐다. 일본 도쿄에 있는 재일본한국YMCA에서 한국어강좌를 들었고 한국을 15번이나 방문했다. 강원도 고성, 강릉, 목포, 광주, 부산 등을 두루 다녔다. 대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대구에는 미인과 사과, 섬유가 유명하기 때문에 단기어학연수를 오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어공부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 한국어는 일본어와 달리 된소리 발음이 어려운 데다 표기와 발음이 다른 경우가 많아 헷갈린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 공부를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나이가 많아 공부할 시간이 적은 것이 안타깝다."고도 말했다.
그는 "한국어는 매력적"이라며 "일본어에는 없는 받침발음이 신기하고 젊은 사람들과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즈키 씨가 꼽는 경상도 사투리의 가장 큰 매력은 끝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
3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추억도 많이 쌓았다. 대구시내 대형서점을 찾아 두세 시간 동안 혼자서 독서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서점에서는 복도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없다."면서 "대구의 젊은이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2, 3번 한국으로 여행 오지 않으면 허전합니다. 죽을 때까지 한국어를 공부하겠습니다. 좀 더 한국어실력을 쌓은 다음 한국어에 대한 책도 펴내고 싶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도전해요'
일본 지바현 사쿠라시에서 온 오가와 고키(小川甲機·65) 씨는 지난 4월 무역회사 임원으로 퇴직했다. 스즈키 씨와는 4년 전 한국어강좌에서 만나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다. 스즈키 씨가 대구로 한국어연수를 간다고 하자 그도 따라왔다. 그는 "60세가 되면 제2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었다."면서 "이왕이면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 언어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5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퇴직한 후 하루종일 한국어 공부만 하고 있지만 "한국어는 어렵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매일 3, 4시간씩 한국어를 듣는 그는 주로 한국가요를 들으면서 공부한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애청곡이다. 그의 목표는 한국 TV의 뉴스를 70% 정도라도 이해하는 것. 판소리 등 한국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천년학'을 봤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2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한국어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3년 후에는 한국어능력시험 6급을 따고 싶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배우고 싶어요
"경상도 사투리 너무 어려워요. 특히 아줌마들이 나누는 대화는 너무 빨라서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일본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에서 온 히라세 가즈오(平瀨和夫·58) 씨는 한국어가 아주 유창하다. 화물차 운전사인 그는 1996년 한국의 동사무소격인 공민관에서 영어, 중국어, 한국어 강좌를 선택하다가 예쁜 한국어 강사 때문에 한국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한국어공부에 재미가 붙자 1998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1년 6개월간 어학연수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는 일본 여자친구가 대구 남자와 결혼하면서 처음 대구땅을 밟았지만 대구의 더위는 참기 힘든 모양이다. "대구는 너무 더워요."라며 씩 웃는다.
그는 한국소설과 시를 좋아한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양귀자, 윤동주, 이상. 그의 호주머니에는 소설에서 발췌한 좋은 글들을 적어둔 카드가 있다. 시간 날 때마다 꺼내 읽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 '박하사탕' 등 한국영화도 좋아한다.
"다시 대구로 오고 싶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열심히 배워서 대구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싶습니다. 한국어 통역가이드시험에도 통과하겠습니다."
▼ 대구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히라세 가즈오, 오가와 고키, 스즈키 히데오(왼쪽부터) 씨가 한국어강사 조미영 씨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이채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