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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갱신칼럼] 교회의 기초 / 차성도 교수

황금천 2007. 4. 1. 08:17

 

[교회갱신칼럼] 교회의 기초 / 차성도 교수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5-18)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다. 이에 대해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자, 바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하는 지가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여기는 가에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할지에 관심이 지대하시다.

가장 중요한 이 질문에 대해 시몬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로 알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올바로 고백할 수 없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 위에 세우시겠다는 중대한 선언을 하셨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기초로 세움을 입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들로만 교회가 구성된다.

건물의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은 치명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듯이, 교회의 문제들은 교회의 기초인 신앙고백이 부실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교회들이 양적 성장을 목표로 질주하다보면 고난과 부활의 복음이 합리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복음으로 왜곡되기 십상이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복음에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복음을 쉽고 값싸게 여기도록 왜곡하자는 것은 아니다. 바른 신앙고백 없이 쉽게 교인으로 받아들여지면 구원의 감격이 없기에 예배를 드리기보다는 예배를 보고 간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예배가 멋들어진 예배를 보기 원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어 내용과 순서가 변질되고 있다.


설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대언되고 복음이 선포되기 보다는 이들이 요구하는 재미나고 달콤한 설교로 변모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은사가 없기에 세상의 경력이나 직위가 교회의 직책이나 직분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효율과 합리라는 미명하에 세상의 온갖 시스템을 주님의 교회에 도입되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다수결이 횡포를 부린다. 진정한 신앙고백이 없기에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정체성이 갖지 못하고 회원으로 자신을 인식하기에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곡된 복음은 왜곡된 교회를 만들기 마련이다. 건물의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이 늘상 흔들리고 문제를 야기 시키듯이, 교회의 기초인 신앙고백이 부실하면 교회는 병약하여 아플 수밖에 없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