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천 경북 경주시 강동행정복지센터 방문 2024년 7월 26일 금요일 (2)
2024년 7월 26일 금요일 경북 경주시 강동면 강동로 19(지번주소 강동면 인동리 29-1)에 있는 강동면행정복지센터(대표전화 : 054)779-8282 Fax : 054)760-7461)를 방문하였다.
강동면행정복지센터는 구 건물을 해체하고 신 건물을 확장 신축하여 입주하였다.
강동면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여 팀장 강동초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강동면행정복지센터 신 건물을 방문해 보니 종전보다 실내 면적이 넓어졌고 다양한 시설이 있다.
황금천 강동 본가는 강동면행정복지센터에서 200m 거리에 있다.
황금천 본가는 강동면행정복지센터 인근에 있어서 도로시설이 잘되어 있고 경주경찰서 강동파출소지구대, 강동새마을금고, 강동우체국, 강동농협조합 등 각종 기관과 강동초등학교가 인근에 있고 다방, 식당, 이발소, 미용실, 카페, 강동의원, 주유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강동초등학교 제18회 황금천 동기생으로 현재 대한민국 대법원 대법원장 조희대 친구를 자랑스러운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강동면행정복지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강동면 소개를 인용한다.
우리 강동면은 경주에서 20㎞지점, 시의 동북단에 위치하고, 동북쪽은 포항시, 남쪽은 천북면, 서쪽은 안강읍과 접하고 있으며, 동.남을 관통하고 있는 형산강과 남북으로 흐르는 기계천을 중심으로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경주-포항 간 7호선 국도와 안강, 영천방면의 국도28호선 분기점으로 교통이 편리하며 주민생활권은 경주, 안강, 포항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2010.7.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양동민속마을과 40여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역사의 고장이다.
특히 양동민속마을은 전국 민속마을 6개소 중 원형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관광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형산강과 기계천을 따라 넓은 평야지에는 쌀, 딸기, 부추, 시금치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는 농촌지역이다.
면적 : 81.48㎢
인구수 : 6,021명(남자 3,067명 여자 2,954명)
세대수 : 3,450세대
(2022. 06 현재)
연혁
신라시대 비화현, 고려현종때 경주 도독부 안강현, 1895년 경주군에 속했다가
1914년 경주군 안강현에서 11개리 29개동의 강동면으로 분면되었으나
1959년 경주시제 시행으로 월성군 강동면으로 되었다가
1972년에 안계댐 수몰로 2개동이 댐에 흡수되어 11개리 27개동으로 줄었고
1989년 군명칭변경으로 경주군 강동면,
1995년 시군통합으로 경주시 강동면, 동년 5월27일 안강읍 갑산리의 일부가 강동면 모서리에 편입되었고, 1997년 유금5리 분동으로 11개 법정리, 28개 행정리동으로 되어있다.
위치 및 지역특색
경주에서 20㎞지점, 시의 동북단에 위치, 동북쪽은 포항시, 남쪽은 천북면, 서쪽은 안강읍과 접하고 있으며,
동.남을 관통하고 있는 형산강과 남북으로 흐르는 기계천을 중심으로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경주-포항간 7호선 국도와 안강, 영천 방면의 국도28호선 분기점으로 교통이 편리하며
주민생활권은 경주, 안강, 포항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양동민속마을에 문화재를 40여점이나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 민속마을 4개소 중 원형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관광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유래
국당리
옛날 이곳에 신당이 있었다 하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마을에서 국화재배가 잘 된다고 하여 국당리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산리
다산, 다질 또는 단구리의 아래쪽이 된다하여 하단구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천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강동면 다산리로 하였다.
단구리
붉은더기 밑이 되므로 붉은디기, 단구, 달성이라 부르며 또는 다산리의 하단구 위쪽이 된다하여 상단구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천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강동면 단구리로 하였다.
모서리
모암산 서쪽 아래가 되므로 모서라 불렀다.
안계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사곡리, 심동, 구경리, 초감리 일부를 병합하고 마을 앞에 안락천이 흐르므로 그 뜻을 따서 안계리로 하였다.
양동리
조선시대에 이르러 어진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 하여 양좌동 또는 양동이라 불렀다.
오금리
마을 뒷산이 다섯 골짜기로 이루어져 마치 거문고처럼 생겼다고 하여 오금이라 불렀다.
왕신리
옛날 이곳에 왕기(王氣)가 있었다 하여 왕신이라 불렀다 전한다. 또는 조선 선조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여 왜군을 물리쳤으므로 믿을 만한 곳이라 하여 왕신(王信)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유금리
옛날 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형산강가에서 한 소녀가 슬프게 울고 있음을 보고 지나던 과객이 이름을 물으니 유금이라 하였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라 하는 이도 있다.
인동리
약 500년 전 경주손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경주부윤이 이 마을 못에 와서 뱃놀이를 하였으므로 어진 원님이 놀았다는 뜻으로 인좌골, 인좌곡, 또는 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명리
깊은 산골이라 범이 울고 다녔다 하여 범어리, 범우리, 호명이라 불렀다.
강동면행정복지센터 홈페이지
2024년 7월 27일 토요일
https://www.gyeongju.go.kr/village/gangdong/page.do?mnu_uid=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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