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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이버대학교 [인물탐방] 김정순 학우
제목 |
기타공지 - [일반] [인물탐방] 김정순 학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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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인물탐방 |
공지기간 |
2010년 01월 05일 (화) ~ 2010년 01월 12일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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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수 |
126 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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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주팔자도 스스로 고쳐가며 산 다’ 라는 다부진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해양대학을 나온 남편과는 배를 타지 않기로 하고 결혼을 했는데 취업이 잘 되지 않아 결국엔 결혼2년 만에 남편은 외항선원이 되어 가정을 떠나 외로운 생활을 시작했고 저는 세무회계사무소에 다시 복직을 하면서부터 정말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형편이 좀 나아지자 그때부터 자아계발에 눈뜨기 시작했고 남편이 없는 빈 공간을 직장생활과 함께 이것저것 다도, 국악원, 평생대학원, 도예 등을 익히며 열정적인 삶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는 저에게 남편은 멀리서라도 유일한 지지자가 되었고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더 많은 격려와 자신감을 갖도록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는 남편의 외조 덕분이었습니다. 지금은 꽤 능력 있고 멋진 선장이 된 남편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정말 고맙다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맘씨 곱고 이쁜 간호사를 만나 결혼하여 2살 된 손녀딸과 함께 아주 행복하게 |
살고 있고 둘째는 대학1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여 지금은 일병으로서 분대장이 되었다 합니다. 자기 위에 상사가 없어서 일찍 분대장이 된 거라며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군 생활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큰아들은 제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을 보고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자기도 여유가 좀 생기면 엄마처럼 다시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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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구경을 나갔다가 횡재를 맞은 기분입니다. 십여 년 동안 취미로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지방에서 몇 번의 입선, 특선, 최우수상을 받아 봤지만 이번 대한민국 신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리라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그저 입선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며시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출품을 했었지요. 그런데 뜻하지 않은 수상소식에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고 아직도 저는 ‘최우수상’이라는 단어가 낮 설기만 합니다. 어쩜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도예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작품과 많은 대화를 하곤 했었지요. 이번에 출품하게 된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내 마음속에 담고 있는 그 많은 푸념들을 조잘조잘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아름다운 푸념>으로 승화되어 멋진 벗이 되어있더군요. <아름다운 푸념>은 두런두런 밖으로 끌어낸 저의 페르조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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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통하여 저는 도예라는 진정한 벗을 만났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우연히 취미활동으로 도예작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 결국엔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흙을 만나게 되었는데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많은 오해와 거짓으로 인한 갈등, 좌절, 체념, 욕심, 번뇌로 인한 삶의 회의에서 몇 시간씩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묵묵히 몰두하는 작업과정에서 작품과 수많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고 제2의 직업을 설계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 47세에 25년 정도 해왔던 세무회계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성격 탓에 약 삼년정도 작은 사업을 하면서 꾸준히 홀로 도예작업을 해 왔지요. 그러다가 결국은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밟고 싶다는 의욕으로 뒤늦은 나이에 전북과학대학에 진학하여 교수님께 전문적인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도예생활 10년째. 저는 전통적인 물레성형보다 다양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출해 낼 수 있는 조형도예를 좋아하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록 결과물의 성공률이 30-40%정도 밖에 되지는 않지만, 결과물에 대한 긴장감, 세상에 단하나 밖에 없는 창의적인 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소박하고 투박한 느낌의 손맛이 좋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레성형이 아닌 코일링 기법을 고집하면서 한 땀 한 땀 쌓아 올려가는 더딘 작업 속에서 긴 시간을 기다려야 만이 한 작품이 탄생하는 조형도예. 가마소성까지 몇 달이 걸려서 내 품으로 돌아오는 볼품없는 나의 분신을 맞이할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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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도예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도강의, 청소년 동반자(상담), 노인병원의 미술치료, 중학교 미술치료와 틈틈이 글(시)을 쓰면서 (사)한국한울문인협회 회원으로서 활동도 했었지만 요즘은 체력과 시간이 딸려서 모든 일들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다 보니 도예작업과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더군요. 당분간은 학교수업과 개인전을 계획 중인 도예작업에만 몰두하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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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 때문에 대학진학을 했었지만 미술치료에도 폭 빠져있었습니다. 도예수업과 함께 미술치료강의를 들으면서 왜 내가 도예작업에 푹 빠져들었던가를 깨eke게 되었지요. 흙 작업을 하면서 맘속에 일렁이는 그 많은 푸념들,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혼자서 주고받다가 어느새 저는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게 되었고 가슴속에 쌓여있던 아픔들이 <아름다운 푸념>으로 승화되어 순간으로나마 넉넉하고 흐뭇한 미소로 하루해를 넘기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곤 했었던 것이었어요. 미술심리치료를 함께 공부하면서 ‘나’를 분석하고 통찰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구나...’를 느끼게 되어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나는 점토라는 매체를 통해 나의 삶이 건전한 욕망으로 거듭났기에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지요. 치료의 효과를 산 증인으로 느낀 계기로 인해 더 전문적인 학문으로 거듭나고 싶어 전북과학대학을 졸업한 후 대구사이버대학교 미술치료학과에 편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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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도움이 되지요. 전문대학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했던 것은 ‘미술치료사가 이런 거로구나’ 라고 낮 설은 장막의 커튼을 쳐들고 들어가서 대충 둘러보는 과정이었고 대구사이버대학교에 편입을 해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는 과정은 장막 안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그래서 내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내담자에게 만 했었던 매체기법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자기분석’의 임상실습 과정에서 내담자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자기통찰’로 좀 더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겸허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또한 미술치료사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적인 상담의 지식기반을 학교 수업을 통해 얻게 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보다 나은 학문을 얻게 되어 더 없이 뿌듯하고 보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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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도예작업과 함께 미술치료사로서 활동을 하면서 오래 전부터 이것저것 취미생활을 해온 각각의 개체들을 한데 묶어 도예와 다도를 접목한 미술치료, 즉 ‘통합예술치료’ 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소박한 공간을 만들어 배운 만큼의 결실을 다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노후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얼마 전에 그동안 살고 있었던 작은 주택을 리모델링 하여 ‘작은 뜰’이라는 아주 작고 소박한 갤러리를 만들었지요. 볼 품 없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지만 누구든지 찾아오면 반가이 맞이하는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차 한 잔을 나룰 수 있는 풍요로운 향기를 마음에 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다가오는 새해 2010년 6월쯤이면 서울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하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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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 자신부터 분석하고 ‘통찰’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 사실 미술치료를 통해서 저 스스로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어 거듭날 수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으로만 가지고 오만한 태도로 대상을 치료하려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술치료를 받아야할 대상에는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국은 빛나고 화려한 전문직이 아니라는 것, 즉 누군가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진솔한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봉사 정신이 결여된 미술치료사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충족의 포커스를 짧게 두는 것이라고 했지요. 작은 성취에도 행복해 하는 소박한 사람이 되어 이웃이 또한 사회에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포근하고 넉넉한 미술치료사로서의 덕목이 갖춰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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