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과 살고 있다. 너무도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데,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한데 왠지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무지 슬펐고 무지 외롭고, 무지 작아 보였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찌해야 한 몸을 이룰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그 관계에서 파생되어지는 나의 분노는 아이들의 마음을 날카로운 언어의 비스로 헤집어 놓았다. 특히 큰아이에게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무언의 눈빛으로 그를 무시하고 비방하고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전에 받아 두었던 책들을 읽으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이 있는 줄 알지 못했었다. 남편과 하나 되지 못하고 주님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결과가 온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접하고부터 남편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명령임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당신 내가 그렇게 좋아?”라는 소리가 내 귓등에 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나를 통해서 그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리라 기대한다.
그것 말고도 내게는 해결되지 않은 서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또다시 나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곤 했다. 계속되어지는 무기력, 자학감이 나를 휘감았다. 생활 속에서 예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나님은 책들을 통해 나의 무기력과 자학으로 인해 아이에게 주는 상처들을 보게 해주셨다. 아이들에 대한 비판의 눈초리와 저주스런 말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졌다. 가슴이 시렸다. ‘어떻게 해야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주님 보여주세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게 있는 상처를 치유해 주세요. 그래서 엄마이면서 엄마의 상처를 고스란히 딸들에게 전할 수밖에 없던 나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은 책 속의 실례들을 통해서 나와 함께 하셨던 주님을 만나게 허락하셨다. 난 책을 통해 나의 내면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도 주님과 동행함을 늘 누리고 살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치유 박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
큰아이가 나의 말을 부정하거나 순종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어찌 해볼라 했을 나에게 『네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라』라는 약이 생겼다. 주님의 말씀을 자녀의 입술을 통해 읽으라고 했고, 읽은 후 아이를 안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딸 이전에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하나님의 딸이, 하나님의 비전대로 살아갈 주님의 친구가 거기 있었고, 거룩하신 주님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이것이 비단 나만 느끼는 감동으로 끝나지 않길 소망한다. 이제 나에게는 주님이 주신 지혜가 생겼다. 결혼은 준비되어져야하며, 부모도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그것을 알리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나를 치유하신 그 주님을 다른 분들께서도 조속히 만나시길 기도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