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반'하기만 하면 그만인가? / 차성도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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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 7:11)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 율법에 대해 철저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통렬한 비판을 가장 많아 받았다. 그 이유로는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마 7:9)처럼 자신들의 유전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이 종교적인 생색을 내면서 대대로 애용하던 구호가 바로 ‘고르반’(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다)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 7:11)같이 부모에게 드려야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며 ‘고르반’이라고 외치고는 부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들은 부모에게 드릴 것조차 하나님께 드렸다고 종교적인 과시를 하지만, 성경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에서 분명하게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말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애용하던 ‘고르반’ 비법이 교회에까지 전수된 것 같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고르반’이라고 외치고는 부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듯이, 교회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린바 되었다며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고아와 과부를 모른척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건축을 위해 빚을 내면서까지 재정을 몽땅 투입했다거나 최고의 예배를 드리려고 최고급 내부시설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들었기에 고아와 과부를 위한 여분은 없단다. 이렇듯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고르반’을 외치고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같이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경건은 다름 아닌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반기독교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교회가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면서 정작 교회는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며, 교회는 그처럼 십일조를 강조하면서 교회의 재정을 드려 사회를 섬기지 않고, 교회는 그리도 정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교회는 자신의 부조리는 눈감아버리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남에게 주장만 했지, 정작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는 행하지 않으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답시고 ‘고르반’만 외치며 교회의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고르반’이라는 구호 뒤로 숨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릴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 교회들이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라고 했듯이 우리도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필요한 자들에게도 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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