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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도서관에서 대학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

황금천 2009. 10. 6. 12:51

 

[잡글]도서관에서 대학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

 

 

[잡글]도서관에서 대학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
• 글번호 : 19564
• 작성일 : 2009년 10월 6일 (화) 09:22:44
• 작성자 : 문동섭(문사서)
• 제   목 : [잡글]도서관에서 대학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
지난 2009년 3월, 나는 인사이동으로 7년 동안 일해 온 도서관을 떠나 대학 행정부서인 기획팀으로 오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인사명령에 처음에는 충격과 당혹감으로 며칠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나 역시 언젠가는 도서관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그 충격과 당혹감은 이내 진한 서운함으로 남았다.

사실 대학도서관 사서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대학 당국의 징발(?)로 인해 도서관을 떠나고 있다. 학생 수가급격히 감소하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에서는 이런 현상이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대학은 행정부서의 인력 공백을 도서관 사서로 채우고, 도서관에는 사서가 아닌 비정규 행정직을두거나 아예 인력보충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서직의 행정직 전환은 이제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도서관을 떠난 대부분의 사서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행정부서로 온지 한 학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도서관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이 마음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또 한 번씩‘이제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 저릿한 슬픔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떠나게 된 내게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승진했구나’하며 악수를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이런 인사를 건네는 것일까?

나는 축하 인사에서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근본적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축하’는 좋은 일, 기쁜 일이 있을 때 해주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도서관을 떠난다는 것은 정체성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태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한직에서 요직으로 일종의 발탁이 된 좋은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직급과 호봉의 변화 없이 단지 업무만 달라졌을 뿐인데 승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중요하지 않은 곳, 행정부서는 중요한 곳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인식은 직장동료에게서 더욱 여실히 나타났다. 짐을 챙겨 기획팀으로 출근한 내게 적지 않은 동료들이‘축하한다’는 인사에 이어‘좋은 시절 다 갔다’,‘ 이제부터 고생 좀 하겠다’라는 말을 건넸다. 동료들이 꼭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런 말들이‘지금까지 도서관에서 일 같지 않은 일 하다 왔으니 이제부터 일다운 일 좀 해야지’로 들렸다. 물론 나만의 괜한 피해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도서관을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내게 축하해 준 것은 아니다. 평소 도서관을 자주 찾고, 나를 바쁘게 했던 학생, 교수, 직원들은‘앞으로 자료는 누구에게 찾아 달라고 하지’,‘도서관으로 다시 와야 하는데’하며 내가 도서관을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중에는 대학 인사행정의 적절치 못함을 성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일부이긴 했지만 나와 소통해 왔던 도서관 이용자들의 이런 말들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만약 나를 아쉬워하는 도서관 이용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면 내가 이렇게 허망하게 도서관을 떠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 그렇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나의 서비스를 아쉬워했다면, 다시 말해 도서관에서 나의 존재감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면 대학 당국도 나를 일반 행정부 서로 쉽게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도서관에 있을 때 더 열심히 할 걸’,‘도서관 고객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걸’하며 뒤 늦은 자책감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내가 도서관을 떠나게 된 것도 그동안 대학 경영자와 구성원들에게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을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한 내 탓인 셈이다. 지난 7년의 세월이 참으로 아쉽고, 후회스러웠다. 그런 자격지심이 머리와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를 않자 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서관에 대한 대학구성원들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가짐부터 달리 했다. 도서관을 떠난 사서가 아니라‘도서관에서 대학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가 되기로 했다. 일단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일반 행정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도서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도서관 사서가 그냥 놀고먹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직원들에게는 책이 도서관에 들어와서 서가에 꽂히는 과정이 열 단계가 넘는다는 이야기, 도서검색을 위해 책 한 권당 입력해야 하는 정보가 수 십 가지라는 이야기, 도서관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각종 황당 사건들 등 도서관과 사서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섬세한 작업을 하는지, 또 사람들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최대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었다. 

또 자녀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직원에게는 도서관이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키우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해 주었고, 주말이나 휴가 때 할 일이 없다는 직원에게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몇 권 추천해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동료직원들에게 업무관련해서 필요한 자료가 없는지 물어 보고, 만약 있다고 하면 필요한 자료를 도서관과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검색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로서 나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업무 중에는 대학평가에 관한 일도 있다. 그래서 도서관이 대학에서 좀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평가항목에 도서관관련 부문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사실, 도서관에 있을 때는 대학의 일반 행정부서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보니 도서관의 어려운점을 대학 당국에 제대로 피력하지 못했고, 직원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교류할 기회와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오히려 지금,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

또 다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도서관에 있을 때도 마치 도서관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처럼 행정부서를 찾았다면 좋았을 걸’하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주변에서는 나의 이런 모습을 의아해 하기도 하고,‘너는 어쩔 수 없는 사서다’하며 고개 끄덕여 주기도 한다. 

이처럼 내가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깊기 때문이고, 사서라는 내 직업에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나는 내일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껴왔었다. 그렇게 도서관에 있음으로 나는 참 행복했었다. 아마 그런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가져가고 싶어서 계속 사서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도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도서관을 이야기 할 것이고, 도서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할 생각이다. 지금처럼 도서관에서 행정부서로 파견 나온 사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영원히 사서로 사는 길이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 행복한 사서가 되는 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대학본부와 도서관 사이에 놓인 큰 강에 열심히 다리를 놓을 작정이다.


덧글 : 이 글은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 문화'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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