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통일교육위원

중국 백두산 통일현장답사 2009. 06. 11(목) ~ 14(일)

황금천 2009. 7. 5. 23:24

 

중국 백두산 통일현장답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산시협의회 제13기 자문위원 백두산 통일현장답사에
참가하여 백두산, 심양, 용정, 도문지역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2009년 6월 11일(목)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중국 백두산, 심양, 용정, 도문지역도 둘러보고 왔습니다.

가. 연수기간 : 2009. 6. 11(목) ~ 14(일)
나. 연수장소 : 중국 심양, 백두산, 용정, 도문 일원
다. 참가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산시협의회 제13기 자문위원 총 24명
라. 주최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산시협의회
마. 둘러본 지역
중국(심양, 백두산, 용정, 도문)
백두산 천지못을 보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다행히 직접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백두산에는 6월 11일(목) 눈이 내렸고 안개가 잘 끼는 지역입니다.
해발 2,744m 지역이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아주 심합니다.

 

 

중국 여행기(심양, 백두산, 용정, 도문 지역)


나는 2009년 6월 11일(목)부터 14일(일)까지 3박 4일간 중국을 여행하였다.

외국 여행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북한방문 이후 이번이 5번째로 중국은 처음으로 갔다.


6월 11일(목) 11:25 CZ668 중국 비행기를 타고 태어나고 처음 중국으로 출발하였다.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밟고 북릉공원, 서탑가 등을 관람하였다.


심양은 요영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최대도시이다. 1625년 누루하치가 세운 금나라부터 만주제국에 이어 청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서 번성하였으며,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후에도 중국의 두 번째 수도로서 동북역의 중심지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금나라를 시작으로 만주제국에서 청대까지 부흥시기였기에 이곳에 가면 만주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북릉공원은 청대 황가의 왕릉과 현대적 공원이 합쳐진 관광 명승지이다. 푸르게 우거진 수목과 하늘을 덮고 있는 고송림 사이로 북릉의 오래된 건축물이 위엄있게 서있으며 황금빛 지붕이 눈을 부시게 한다. 소릉은 청조의 시작에서 끝날 때까지 만들어진 “관외삼릉(關外三陵)” 중 규모가 가장 크며 부지면적도 450만 평방미터로 북릉공원의 가장 중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탑가는 옛날에 지어진 심양시의 동, 서, 남, 북에 위치하던 탑과 절에서 그 서쪽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한 거리란 뜻으로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서탑가는 현재 많은 조선족 및 한국교민들이 모여 살며 학교, 병원, 문화관을 지어 그들을 위한 행정, 상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소수민속촌 거리이다. 거리 곳곳에서 한글간판을 볼 수 있어 매우 정겹고 반가운 곳이다. 한국식당, 수퍼마켓이 즐비하다.


심양공항에서 연길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구 219만 5,000명 정도로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40%가 조선족이다.


조선말기 우리 민족이 이주하면서 연변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으며 그 때문에 청산리항일전승지, 봉오동항일전승지, 일송정 등 유적지가 많다.


연길은 2,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0여년 전부터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이며 중국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로 백두산과 가까워 매년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연변자치주 내의 정부기관이나 신문 광고 등에 조선족 자체의 문자를 우선적으로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연변의 거의 모든 옥외광고가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공용어로 되어 있다.

연길은 중온대 반습윤기후에 속해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겨울이 길고 춥고 뚜렷한 대륙성 계절풍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백두산은 해발 2,744m의 장백산맥 주봉인 백두산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이룸과 동시에 원시삼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천지는 백두산 풍경 중 최고로 뽑히며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평균수심이 204m 정도이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한다.

천지의 수심 중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가장 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연평균기온은 -7.3℃, 평균수온은 0.7 ~11℃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얼음의 두께가 1.2m나 된다. 천지의 수질이 매우 깨끗하여 먹을 수 있으며, 주로 지하수와 강수량으로 채워진다. 이곳에는 잉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중국과 북한의 국경 호수로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하지만 이곳의 기후가 불규칙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발생해서 여행객들이 맑은 날에 천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천지는 또 국경선이 통과해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놓여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장백폭포는 높이가 60여m의 웅장한 폭포로 2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폭포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치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룡폭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용정은 연길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용정시는 가곡 선구자들의 배경도시로서 용문교, 해란강, 일송정 등 독립운동가들의 민족혼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일제시대 민족시인으로 불리우던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건립된 과거 대성중학교로 불리우던 용정중학교가 있다.


용정중학교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학교이다.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져, 구관 앞에는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가 새겨져 있는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건물 2층에는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기념관에는 사진, 화보, 책자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당시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은 재야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전 총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도문은 연길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현재는 중국, 북한의 국경으로 사용되는 국경지역이다. 65년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중국과 북한은 도문대교로 연결되어 그 절반으로 국경을 나누고 있으며, 다리 아래로 두만강과 강건너편의 북한의 산하와 건너편에 지어진 북한의 도시를 볼 수 있다.


두만강은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에 위치한 강이다. 역사적으로는 분단의 아픔을 지닌 곳이며, 최근에는 월북자들이 생사를 달리하는 가슴 아픈 장소가 되고 있다.  


해란강은 두만강 지류로 선구자에서 언급된 용정지역의 강이다. 이 강이 선구자에 언급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 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물줄기가 마랄 모습이 미흡하다.


일송정은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에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이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다.   


6월 11일(목) 백두산에 눈이 내려서 차가 올라가지도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다른 지역 구경을 하러 코스를 이동하여 갔다.


나는 6월 12일(금) 오후에 배정이 되어 제설작업을 하고 일부는 길에 있는 눈이 녹아서 백두산까지 왕복하는 짚차를 타고 올라갔다.


백두산 천지를 올라가는 순간에 천지가 선명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잠시 후에 안개가 끼며 천지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천지라는 뜻은 많은 사람들이 천지를 보러 오지만 안개가 끼거나 기상조건이 좋지 못하여 천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천지배까리라서 천지라고 한다”고 말하여 한바탕 웃었다.

정말 백두산 천지를 보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하였다.


도문에 가서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인들이 보였다. 땟목 배를 타고 강을 누비다가 왔다.


용정중학교에서는 이육사 기념관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이육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을 보고 이육사 시를 읽어보고 다시 한번 이육사에 대한 것을 상기하고 사진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 등을 기재하고 약간의 기금을 기부하였다.


장백폭포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였고 내려오는 길에 뜨거운 온천수에 넣어서 익힌 달걀을 사서 맛을 보면서 중국 여행을 즐겼다.


중국에서 북한국경 근처를 지날 때 북한의 집들을 보고 몹시 어렵게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였다.


백두산 천지를 오고가는 짚차는 우리나라 총알택시보다 더 무섭게 빠른 속도로 커브로 된 산길을 달렸으며 정말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 기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별 반응이 없었다.


백두산 올라가는 길을 자세히 보니 돌을 깨어서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바퀴가 마찰이 커서 제동장치가 작동하면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어서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손목시계를 1시간 늦추어 조절하였다.


2009년 6월 14일(일) 07:45 심양공항 출발 중국 항공기 CZ667 타고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


매일신문 시민기자 황금천

whang16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