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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표지인 세례와 성찬 / 차성도 교수

황금천 2008. 10. 27. 01:17

 

교회 표지인 세례와 성찬 / 차성도 교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 22:19)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교회의 표지 세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하나님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순종, 세례와 성찬의 바른 집행, 그리고 권징과 치리의 바른 행사이다. 이번에는 세례와 성찬의 바른 집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여기서 ‘바른’은 ‘성경의 원리대로’를 의미하므로, 교회에서의 세례와 성찬은 당연히 성경의 원리에 따라 집행되어야 한다. 세례와 성찬의 성경적 원리들은 무엇인가?

우리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지상명령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처럼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것이다. 제자 삼는 첫 단계가 바로 세례를 주는 것이기에, 세례는 미루거나 생략이 불가하며 반드시 집행해야한다. 빌립 집사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 베푸는 장면인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행 8:35-38)에서 보듯이 세례는 복음을 전해서 믿는 자에게 베풀어야하며, 믿는 자라면 세례를 집행할 수 있다. 믿는 자에게만 세례를 준다는 성경의 원리를 따르려면 유아세례의 문제를 진지하게 재고해야하며,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교회와 세례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재세례 신자들의 순교정신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교단에 따라 교회법으로 세례의 집례를 엄격하게 제한하지만, 주님의 지상명령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어하므로 빌립 집사가 그랬듯이 믿는 자라면 세례를 집행할 수 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다는 의미에서 세례식은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했음 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장례식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거듭남을 축하하는 영적인 생일날이기도 하다.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공적인 선언인 동시에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로의 결단이기도 하다.

초대교회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했듯이 성찬은 모일 때마다 참예하고, 어디서나 행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일 년에 몇 차례만 성찬예식을 갖지만 주님의 몸과 피, 그자체가 어떤 메시지보다 핵심이고 강력하다면 더 자주 그리고 더 진하게 성찬에 참예해야한다. 아울러 초대교인들이 집에서 떡을 떼었듯이, 성찬은 예배당에서만 갖는다는 도식에 벗어난다면 성찬을 통해 어디에서나 풍성한 은혜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 22:19)처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을 행하라고 명하셨기에 성찬은 믿는 자라면 행할 수 있다. 세례처럼 교단에 따라 교회법으로 성찬 집례를 엄격하게 제한하지만, 너희가 성찬을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이 소중하고 귀한 성찬의 특권을 모든 주님의 제자들에게 열어 놓는다면 성찬의 풍성함이 더욱 넘쳐날 것이다. 여기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do this in remembrance of me)’는 기념하는 의식이 아니라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대부분 성찬이 예배의 부수적 요소이고 많은 수의 교인들이 한꺼번에 참여하다보니 성찬이 조직적으로 재빨리 진행되는 하나의 행사가 되고 만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성찬중심의 예배를 자주 가져야 주님을 기념하는 성찬예식만이 아닌 주님을 기억하는 성찬참예가 될 수 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처럼 한 떡에 참예하므로 한 몸임을 확인하므로, 성찬은 이미 나뉜 작은 떡과 잔이 아니라 하나의 떡과 잔에 참예하므로 성찬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 실로 엄중한 예식이므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고전 11:28)처럼 성찬은 반드시 자신을 살피고 나서야 참예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와 같이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하겠다는 다짐이다.

세례와 성찬의 바른 집행은 교회의 핵심적인 표지이며, 바른 집행은 성경적 원리대로 집행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전통이나 교회법이라는 이름으로 닫쳐진 세례와 성찬이 성경의 원리대로 열려서 모든 교회들이 주님의 생명력이 넘쳐나는 놀랍고도 풍성한 세례와 성찬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1세기관계적교회
프랭크 비올라 | 미션월드
1세기 교회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사모하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교회는 조직화된 기관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 리더십은 성직자 개념 아래 주님의 몸의 생명을 필연적으로 깨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1세기 교회의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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