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소식

[잡글]도서관에서 열람실을 도려내고 싶다

황금천 2008. 10. 10. 02:14

 

[잡글]도서관에서 열람실을 도려내고 싶다
• 글번호 : 18744
• 작성일 : 2008년 10월 10일 (금) 00:45:12
• 작성자 : 문동섭(LIBNEWS)
• 제   목 : [잡글]도서관에서 열람실을 도려내고 싶다

- 대학도서관 사서가 바라본 '자리 맡기' 경쟁 (2008/10/09 오마이뉴스 기고)

며칠 전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는데 내 눈길을 잡아끄는 기사가 있었다. '대학도서관 '자리 맡기' 경쟁 법정 간다'라는 제목으로 <한겨레>가 보도한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의 한 대학도서관에서 열람실 자리를 '사석화'하는 학생을 적발하여 도서관 출입을 금지시켰고, 이 때문에 학생들은 과도한 조처라며 법정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나는 이 기사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도 열람실 '자리 맡기'로 인한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상 칸막이 테이블로 상징되는 이른바 '자유열람실'을 운영하고 있는 도서관이라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자리 맡기'가 도서관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물론, 좋은 자리를 장시간 확보해 좀 더 편하게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서관 입장에서는 한정된 자리를 학생들이 보다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제재를 가해야만 한다. 

대학도서관에서는 어떻게든 자리를 맡아두려는 학생과 이를 막으려는 도서관 사이에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 학생이 여러 친구의 자리를 맡아두기 위해 칸막이 테이블마다 책 한 권씩 놔두고 가는 경우가 있다. 또 장시간 자리를 비움에도 개인 물건을 그대로 놔두고 가 다른 학생들이 그 자리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리 맡기'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대학도서관들이 수천 만원에 이르는 '좌석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좌석관리시스템은 학생증으로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고, 학생증 하나에 한 개의 자리만 배정받을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도서관은 한 명의 학생이 여러 개의 자리를 맡아 두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열람실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는 3시간 혹은 4시간마다 갱신절차를 거치도록 해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자리를 점유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했다. 

하지만 도서관 기대와는 달리 학생들은 당번을 정해 한 명의 학생이 학생증을 거둬 여러 개의 자리를 배정받고, 갱신하는 방법으로 좌석관리시스템을 간단하게 무력화해 버렸다. 심지어 학생들 중에는 무거운 책 대신에 학생증만 있으면 자리를 맡을 수 있게 되어 더 편해졌다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학생들은 언제나 도서관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내놓는 제재나 규정은 언제나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도서관 사서 입장에서는 이런 열람실 '자리 맡기'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할 사소한 갈등 정도로 여길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도서관에 책이 부족하다는 불만보다 열람실 자리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더 많이 들어야 하고, 보고 싶은 책을 먼저 보기 위한 '책 맡기' 경쟁보다 열람실 '자리 맡기' 경쟁이 더 치열한 현실은 도서관의 위상과 역할이 열람실로 인해 왜곡·축소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현상을 좀 더 깊이 따져보면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현실을 상징적으로 들여다보는 듯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보니 한 번씩 도서관에서 열람실을 도려내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학생들의 꿈과 열정을 갑갑한 열람실에서 억누르고 있는 현실이 분명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서관과 학생 모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도서관은 '열람실'이 의미 그대로 '도서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령 자유열람실 자리를 점진적으로 없애고, 그만큼 책을 볼 수 있는 서고열람실 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또 심리적으로 단절감과 고립감을 줄 수 있는 칸막이 테이블을 걷어내고,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탁 트이고 넓은 열람 테이블로 교체하는 것도 좋겠다.

더불어 '열람실'을 도서관에서 아예 독립시키고, 이름도 '독서실', '학습실'로 바꿔서 열람실이 도서관을 상징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노력도 했으면 한다. 

학생들도 독서실 같은 열람실에서 각종 수험서의 단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자신을 발전 시키는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열람실 '자리 맡기' 같은 기이한 경쟁과 갈등이 근본적으로 없어지게 될 것이다. 

흔히 이 바닥에서는 도서관을 '성장하는 유기체'라고 한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료를 모아둔다. 사람들은 그 자료를 이용하여 다시 새로운 자료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자료는 다시 도서관으로 오게 된다. 이런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도서관도 사람과 더불어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 열람실이 단순히 독서실 기능에 멈춰 버린다면 사람과 도서관의 유기적인 성장도 멈추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했으면 한다.


원글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9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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